독서와 인문학

종교적 신념에 따라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투자하는 엔지니어 2023. 4. 26. 20:01

최근에 사이비 종교에 대해 논란이 많다.

사이비 종교는 사람을 비이성적이게 만들게 하고, 종교적 권위를 악용하여 피해를 만든다는 점에서 아주 악질인 범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록 사이비 종교라 하더라도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이후에 벌어질 일에 대해 충분히 인지를 한 다음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법으로 제지를 해야할까?

 

아래 예시를 보자

 


A라는 미성년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님이 다니시던 사이비종교를 신앙삼아 자랐다.

A는 매우 똑똑한 아이였고, 항상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날 A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렸는데 해당 사이비 종교는 병원을 금기시하며 기도만을 통해 치료해야하는 교리를 갖고 있다.

A는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자신이 치료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치료하길 거부했다.

A의 부모님도 역시 종교적 신념으로 A가 치료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기도를 하면 낫는다며 기도만을 반복했다.

 

당신이 판사라면, A를 강제로 치료를 하게끔 할 것인가 A의 의견을 존중할 것인가?

 

- A는 현재 미성년자이다.

- A는 태어날 때부터 사이비종교의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매우 똑똑한 사람이지만 일반적인 환경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A가 강제로라도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왜냐하면 종교를 이유로 치료를 멀리하고 기도만을 한다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A가 아무리 똑똑하다 하더라도 미성년자이고, 한정된 세상만을 겪어왔기에 이번 만큼은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따라서, A의 잘못된 선택 대신에 강제로라도 치료를 받게 하여 A가 건강을 되찾게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건 너가 생각했을 때 옳은 거 아닌가?

 

다른 예시를 생각해보자


존 콜리어의 Lady Godiva

위 그림은 11세기 잉글랜드의 지방 영주의 부인인 고다이버를 그린 그림이다.

가혹한 세금으로 고통받는 농노를 위해 영주에게 세금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가, 영주가 알몸으로 영지를 순회하면 세금을 낮춰주겠다고 해서 실제로 나체로 영지를 돌았다는 전설을 그린 것이다.


고다이버가 알몸으로 거리를 나서는 것은 옳은 일인가?

고다이버는 농노를 위해서 희생한 것이고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나선 것이기에 칭찬을 해야하는 것인가?

 

고다이버와 치료를 거부하는 A는 무엇이 다른가?

A도 자신의 죽음을 알면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그런 선택을 한 것이고, 고다이버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면서도 농노를 위하는 마음을 위해 이런 선택을 한 것이다.

 

이 두 예시에서 차이점이라곤 A는 비일반적인 "사이비 종교"라는 신념인 것이고, 고다이버는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라는 통상적으로 요구되는 "선"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선"은 무엇인가? "사이비 종교"는 무엇인가?

"생명"이라는 것에 위협이 되는 "치료거부행위"는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가치를 잃게 하는 것이어서 나쁜 것인가? A에게는 생명보다는 신념이 더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은가.

 

독립운동가들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 조국을 위해 희생했다.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독립운동도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고, 전쟁에서 순국한 용사들도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국가라는 "주류"를 위한 희생을 숭고하고, 사이비종교라는 "비주류"를 위한 희생은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주류"에 속해있을 때 "비주류"를 향해 "선의를 베푼다".

사이비 종교로 인해 잘못된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선의"로 치료를 하는 것이 옳다고 강제하고,

테니스와 골프, 클라이밍이라는 인싸들의 취미는 좋은 것이고,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은 자기관리를 못했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설령 그 사람이 판검사나 의사더라도...

아니, 판검사나 의사라는 직업에서 조차 중소기업, 일용직 근로자같은 직업과는 또 구분짓는다.

 

"주류"라 해서 옳고, "비주류"라 해서 틀렸는가?

주류에 속한 사람은 비주류에 속한 사람에게 "연민의 특권"을 행하곤 한다.

 

평생을 가부장 사회에 살아온 사람에게 할머니는 핍박받았고, 할아버지는 과도한 책임을 졌다고 공격하고,

동성애자에겐 그건 잘못된 일이니 당장 헤어지고 이성을 만나라고 강요한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고 하면서...

 

자신이 속한 주류의 관점에서 상대방을 끌고나와서 지적하는 것은 "타인을 계도한다는 도취감"말고는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반응형